[경주 소금강산]
*2014.11.29 (천년미소)
재작년 이맘때쯤 소금강산을 찾았다.
그날 걸었던 길의 답습이다. 비슷한 시간을 걸었고, 같은 장소에서 쉬었고, 하산후 점심식사를 한 식당도 같은 집이었다.
사진 역시 같은 풍경의 사진을 남겼고, 함께한 분들 역시 천년미소였다.
▲표암 옆 탈해왕릉
이 능은 신라 제4대 탈해왕(재위 57∼80)을 모신 곳이다.
유리왕의 유언에 따라 62세에 왕이 된 탈해왕은 난생설화(卵生說話)를 가지고 있다.
『삼국사기』에 의하면, 왜국 동북 1,000리 지점에 다파나국의 왕비가 알을 낳았는데 불길하다 하여 보물과 함께 궤짝에 넣어 바다에 띄워 보냈다. 처
음에는 금관국(김해)에 닿았으나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겨 아무도 거두지 않았고 다시 진한의 아진포에 닿았는데 노파가 거두어 키웠다. 궤짝이 떠오를
때 까치 한 마리가 따라다니며 울었다고 하여 까치 작(鵲)자에서 조(鳥)를 떼고 석(昔)으로 성을 삼고, 아이가 궤를 풀고 나왔다 해서 이름을 탈해(脫
解)라 지었다. 탈해왕은 석(昔)씨의 시조로서 신라 최초 석씨 왕이 되었다.
이 왕릉은 20세기 초에 석씨 일족이 석탈해의 능으로 비정함으로써 현재까지 탈해왕릉으로 불리게 되었다고하지만 그 위치에대한 부정적 시각도 있다.
왕이 세상을 떠나자 삼국사기에는 "성북의 양정 언덕에 장사하였다."고 하였고, 삼국유사에는 "수장하였다가 뼈로 소상(塑像)을 만들어 동악(東岳)에
모셨는데 지금의 동악 대신(大神)이다."라고 하였다.
그러나 삼국사기의 성북이라고 한 점이 현재의 위치와 부합된다. 이 무덤은 높이 4.5m, 지름 14.3m 크기로 둥글게 흙을 쌓아올린 봉토무덤이다. 주변
에 아무런 시설을 하지 않았으며, 겉으로 보아 굴식돌방무덤[횡혈식석실묘]으로 추측된다.(출처:네이버 지식백과)
▲표암재 산앙문
표암은 경주이씨의 시조인 李謁平公(이알평공)이 하늘에서 내려온 곳이라 한다.
▲표암 유허비
▲유허비가 세워진 언덕에서 본 표암재
▲광림대 - 알평(閼平)이 강림하여 처음으로 발을 딛었던 장소이다. 비각 안에는 비석을 세웠던 듯한 받침돌만 남아 있다.
▲산불감시초소 - 소금강산 정상을 대신하고 있다.
실제 소금강산 정상은 이 산불초소에서 50여 m 떨어진 봉우리로 삼각점만 있다.
▲마애삼존불좌상 안내판
▲마애삼존불좌상
소금강산 정상부를 우회하는 비탈에 있다.
▲조망이 트이는 곳에서 내려다 본 동천동 일대와 멀리 단석산
▲금학산 정상부 조망도
▲금학산 정상부
▲금학산 정상부에서 건너다 본 단석산쪽
▲성지골샘터로 내려서다.
▲예전처럼 작은 소류지 지나면서 한 장
▲논두렁 지나는 그림도 예전과 똑 같다.
▲백률사
▲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
▲사면불상 서쪽에 새겨진 아미타삼존불
『삼국유사』 에 의하면 신라 경덕왕이 백률사를 찾았을 때 땅속에서 염불 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. 땅을 파 보니 이 바위가 나와서 바위의 사방에 불
상을 새기고 절을 지어 굴불사라 하였다고 전한다. 이 기록만으로는 분명하지 않지만, 여러 가지 여건으로 보아 이때쯤 불상이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
정된다.(출처: 문화재청)
▲날머리 백률사주차장
▲흔적
표암-소금강산-승삼지-궁상각치우-금학산-성지골샘터-백률사(7.6km/3시간)
소금강산(경주)(표암-소금강산-승삼지-금학산-백률사)_20141129.gpx